정말 간만에 들어왔는데..
아직도 간간히 들어와 보시는 분들이 계시네요..
버려두고 방치했던 블로그인데..

과연 그분들은 여기 들어와서 무슨 생각을 할까?

내가 어떤 메세지나 의미를 전달하고픈 블로그도 아닌데..
그래도 검색이던.. 아니면 우연히 클릭을 잘못해서 들어왔던..
행인일지라도.. 참 성의없는 블로그라는것을 느낄것 같습니다..

사는게 힘이들고 왜 사는지도 모르겠고..

다들 그런 생각을 가지진 않겠지만 태어나고 성장하고 타협하고 안주하고..

세상은 이제 36년을 살아보니까 내 맘대로 되는것은 그다지 많지 않고 우연과 타이밍.. 이걸로 많이 좌우되는것 같습니다.
폼나게 살고 떳떳하게 살고 남에게 아쉬운 소리 안하고 살고.. 참 소박한 꿈이지만 대단한 이상이기도 하지요..

나보다 잘난 이들을 바라보면서 시기하고.. 나보다 못한 이들을 보면서 흐믓하기도 하고..

항상 올바른 길과 떳떳한 맘을 가지고 세상을 내 중심이 아닌 타인 중심으로 보려하고.. 정의가 뭔가 하고 고민하지만..

삶은 안 그런것을.....

삶은 안 그런것을.....

아니 내가 안 그런 것을..

36살 먹고.. 삶의 의미를 남보다는 풍요롭고 원리 원칙만 따지고.. 내가 불편하면 나름 대로의 논리를 만들어서 나를 합리화 하고..

앞으로 살아갈 날이 40년은 남았을 텐데.. 40년을 이대로 살아도 좋은 것일까?

먹고 살만 한데..

어쩔 수 없는 놈..
by FreeMan | 2010/07/18 22:11 | 무념.. | 트랙백 | 덧글(0)
나의 정치적 성향..


한번 해보세요..http://h21bbs.hani.co.kr/politicalcompass/
내가 생각보다 왼쪽으로 많이 갔군.. 흠..
by FreeMan | 2010/03/17 12:15 | 무념.. | 트랙백 | 덧글(0)
정신차려
니 인생은 이대로 끝이야..

그냥 내 인생을 살어..

누구 끌어들이지마..
by FreeMan | 2009/10/14 00:59 | 트랙백 | 덧글(0)
인생에서 1년이란..
1년..

무척 긴시간인거 같고 그 1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기도 할 것 같고..

1년..

20대부터 1년이 아니라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급하고 초조했었던 같다. 당장 지금, 내일부터, 다음주부터, 다음달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 하며..

1년..

1년을 쉬며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내가 사는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을 살아본다면..

가치가 없는 일이 될까? 아니면 새로운 세상을 살 수 있을까? 그것도 아니면 실패의 길로 들어서는 것일까?

34년..

앞만보고 갔던 적도 있고 어렸을 때는 인생이 뭔지도 모를때도 있었고.. 철없이 하루하루 허비했던 때도 있었고..

40년..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라고 하면.. 40년을 지금과 같이 산다는것은.. 정말 그런다는 것은..

행복했으면 한다.. 언제 1년정도의 여유가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곁눈질이라도 하는 내가 소심한게 아니라 그래도 다른 삶을 찾아본다고 생각하고 싶다..

* 비도 추적추적오고 아파트밖 풍경을 안주삼아 소주한잔 하는 어느날..
by FreeMan | 2009/10/13 22:37 | 무념.. | 트랙백 | 덧글(0)
꿀벅지?
소녀시대 티파니, 김정민 '꿀벅지'에 네티즌들 "아…" 부산일보
김정민, '탄력있는 꿀벅지 드러내며 화보 한 컷' 한국경제
‘꿀벅지’ 유이, 엘르 화보…“시크한 매력, 엣지있네” 강원일보
꿀벅지’ 티파니-‘황금골반’ 제시카, “몸매관리는 이렇게” EBN 경제
이 시대 최고의 꿀벅지 여왕은 누구? 독립신문
'
'
'

등등.. 꿀벅지..

대부분 이름도 모르는 흥미위주의 인터넷신문이지만 위에 가끔 종합일간지나 경제지도 있네.. 그리고 왠 독립신문?? (이상하게 조중동이 없네..)

아무리 요즘에 버라이어티 대사 내용 하나가 말도 안돼는 제목으로 기사가 되는 상황이지만 도대체 저런 언론에서 기자라고 밥먹고 사는 인간들은 뭐하는 면상인지 좀 보고싶네.

하긴 "요즘 누가 노래들을려고 소녀시대 보냐? 눈으로 보려고 보지" 라고 했던 술자리의 옆 테이블 그 분 말씀이 정답이긴 하다.

그러니 가수나 텔런트의 가창력이나 연기력을 다 사라지고 "꿀벅지"로 불려지는 것이겠지.

그러고 보니 기자들 탓이 아닌것 같기도 하구..

참.. 요지경이군..
by FreeMan | 2009/09/18 21:29 | 무념.. | 트랙백 | 덧글(1)
서유기 선리기연 엔딩곡
볼때마다 가슴이 찡한 서유기 선리기연의 마지막 장면에서 흐르던 노래인데..

개인적으로 정말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사랑이며 가슴아픈 사랑인듯..


주성치가 손오공이 되기전 했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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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과거에 사랑을 앞에 두고

아끼지 못하고 잃은 후에 큰 후회를 했습니다.

인간사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

후회하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다시 기회를 준다면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겠소

만약 기한을 정해야 한다면 만년으로 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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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生中最愛人 作曲:盧冠廷,作詞:唐書深,

由盧冠廷演唱。歌詞是這樣的:
從前、現在、過去便再不來
紅紅落葉長埋塵土內
開始、終結總是沒變改
天邊的?飄蕩白云外
苦海?起愛恨
在世間難逃?命運
相親竟不可接近
或我應該相信是緣分
情人別后永遠再不來(消散的情緣)
徒然獨望放眼塵世外(愿來日再續)
鮮花雖會凋謝(只愿)但會再開(爲?)
一生所愛隱約(守候)在白云外(期待)
苦海?起愛恨
在世間難逃?命運
相親竟不可接近
或我應該相信是緣分

서유기OST 일생소애
(일생소애:일생중에 가장 사랑하는 사람)

작사: 당수침 작곡: 노관정 노래: 노관정

종전, 현재, 과거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네
붉게물든 낙엽이 쌓여 진토가되듯 시작하고,
매듭짓지만 결국엔 변함이 없다네
하늘가의 그대 흰구름 밖에서 떠 돌아다녀도
사랑과 미움이 교차되는 고해이러라
세상살이 만남과 헤어짐도 운명이라네
서로가 가까운 사이지만 가까이할 수 없어라
그 인연에 맞는 믿음을 서로 갖추어야 하듯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후 영원히 다시 돌아오지 않네
(스러진 인연이여) 속세에서 눈을 돌려
초연해야 한다네(그 인연이 다시 이어져야한다네)
시들어감을 사양하고(원하옵건데)
이 모습 그대로 단지 다시 만나길(그대를 위해)
일생에서 바라는 사랑은(지켜주며)
약속 속에 흰 구름밖에 있다네(기다린다네)
사랑과 미움이 교차되는 고해이러라
세상살이 만남과 헤어짐도 운명이라네
서로가 가까운 사이지만 가까이할 수 없어라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후 영원히 다시 돌아오지 않네

주인 누님.. 폭 빠져서 봤던 기억이..





by FreeMan | 2009/09/16 17:47 | 중국에서.. | 트랙백 | 덧글(0)
정몽준.. 박희태..
정몽준이 한나라당 대표가 되었단다..

노무현과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을 했던 사람인데.. 한나라당 대표라..
하긴 그때도 민주당과 색깔이 맞았다기 보다는 월드컵에 편승한 인기때문에 이회창을 이기려면 표 분산을 막아야 했었기 때문이었으니까 뭐 한나라당에서 대표를 해도 뭐 그렇게 이상할 것은 없다.
한나라당 대통령 경선을 했던 손학규도 민주당 대표를 했는데 손학규는 한나라당 공천으로 경기도 지사까지 했으니 손학규와 비교하면 그래도 말이 되는 경우라 하겠다.
정몽준과 손학규는 이인제때문에 욕 덜먹는 케이스라 하겠다..
그런데 정몽준 이사람.. 현대자동차 앞마당인 울산에서 무소속 국회의원 거의 무임승차만 하던사람이 무슨 정치적 비젼이나 업적이 있다고 우리나라 거대 여당의 대표까지 하나..

정몽준이 한나라당 대표가 되기전까지 박희태가 대표였는데..
이것도 참.. 국회의원선거때 공천도 못받은 사람이 국회의원 유세때 좀 도와줬다고 당내 국회의원심사에서도 떨어진 사람을 대표로 앉힌것인데..
그때 공천에서 떨어진 사람들은 나이도 많고 워낙 지역감정 덕을 많이 본 사람들이라 다른데 갈곳도 없으니 그냥 떡고물이나 받으려고 당내에서 활동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인데 대표까지 시켜줬다.

참 우리나라 정치인들중 제대로 된사람이 없을것은 아닌데 이런 사람들만 대표도 해먹고 잘나가는것 같으니..

국민들.. 정신 좀 챙기자..

이러니까 정형근이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을 하고 있지..
by FreeMan | 2009/09/10 23:13 | 민들레처럼.. | 트랙백 | 덧글(0)
중국 PC방과 대한민국

6월에 중국여행을 가서 우연히 PC방에 들릴일이 있었다.

묶고 있는 숙소에도 PC가 있었지만 그날 하필 고장이 나서 같이 묶었던 한국 사람에게 PC방 위치를 물어 찾아가게 되었다.

예전에 중국에서 1년동안 있을때도 한번도 안갔었는데 이번엔 좀 급해서..

5층인가 있던  PC방에서 중국 종업원과 간단히 대화한 후 자리하나 달라고 했는데 역시 한국인(외국인)에 대한 친절..

중국에 있을때나 갔을때나 느끼는 건데 난 중국사람들이 참 좋다. 대부분 친절하고, 외국인라고 잘해주고..

같이 일했던 친구들 만나러 갈때도 비가 많이 와서 KFC에서 종업원에게 핸드폰을 빌려서 통화를 하거나, 식당에 가서 음식을 시킬때, 그리고 길을 물어보거나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사도  항상 한국인이냐고 물어보고 눈웃음으로 친절을 배풀어 주는..

내가 아는 것이 다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내가 겪은 중국은.. 아니 다른 곳도 마찬가지 겟지만.. 사람 사는것은 다 같구나 하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나 다른 나라에서나.. 다 사람사는 곳이고 다 상식이 통하고 인간으로서의 기본은 문화나 기질을 떠나 대동소이하구나 하고..

어쨋든 PC방에으로 돌아와서.. 종업원이 나에게 신분증은 요구하였다. 한국사람이라서 신분증이 없다고 하니까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니 여권으로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여권을 보여주고 여권번호를 적고 나서 나에게 저쪽 PC를 사용하면 된다고 했다.

그때 느낀것은 아.. 이런게 검열이구나.. 내 신분증번호를 적고 나중에 이 PC를 이용한 사람들을 조회하면 이 사람이 어떤것을 검색했고 어떤 이메일을 보고 어떤 사람과 대화를 하였는지를 다 알수 있겠구나..

근데 나는 이런 중국의 문화, 아니 상황까지 그대로 받아들여 진다. 마치 우리나라가 2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이들도 변하고 인민의 자유가 더 늘어나가겠지만.. 지금은 이것이 이들의 상황이고 이들의 생활인 것을..

PC방을 나오면서 그 직원에게 오늘 고마웠다고 인사를 하고(이 친구에게 핸드폰을 빌려달라고 하니까 친구 핸드폰을 빌려주었다 내 핸드폰이 방전이 되어서..) 다시 상해 시내로 나오면서 검열에 대한 생각을 잠시 하게 되었는데..

자유를 맛본 사람들에게는 다시 그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 용납될수 없을 텐데.. 우리나라는 지금 거꾸로 인것 같은.. 그런데도 심한 마찰없이 받아들이는것 같은..

내가 중국의 이런 상황에 대하서는 이해를 하고 그들의 생활이자 문화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우리나라는 이러면 안될찐데.. 우리나라사람들이 중국인민들보다 우월하지는 않을찌라도 자유와 민주화를 먼저 맛보고 열광했던 사람들인데.. 그들과 같아지려고 한다..

마치 자유와 민주화는 너무 과분하리 만큼 누려봤어 하는것 같은..

by FreeMan | 2009/09/06 20:46 | 민들레처럼.. | 트랙백 | 덧글(1)
대학원
대학원 첫날..
수업 첫 시기간이라 이번 학기의 강의목표, 학기일정들을 간단히 설명하고 대부분 수업은 끝이 났다.

7월에 면접을 보고 두달만에, 그리고 전문대를 나온지 10년만에 다시 학교를 가서 수업을 듣게 됐다.

전문대를 나와서 IT관련 업계에서 10년 가까이 일을 하고 있고, 비록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지만 연봉도 남들보다는 많이 받고 있지만 내가 대학원에 다시 들어가게 된 이유는 배움의 목표가 새로 생겨서도, 보다 깊은 지식을 얻기 위해서도 아니다.

10년 가까이 일을 하면서 깨우치게 된것.. 능력? 지식? 경력? 보다 우선하는것.. 학벌.. 학력이 아닌 학벌..

깨버리지 못하니 그 틈바구니에 둥지를 트려고..

다른 사람도 다 아는것.. 정작 중요한 것은 이게 아닌데.. 하지만 다른 사람도 다 수긍하는것.. 원래 이런것이야.. 굳이 깨트리고 싶지 않은..

첫날 수업을 받고.. 그래! 라이센스 따자고 온것이지만.. 그 시간이 헛되게 하진 말자.. 기왕 하는것..

그 시간을 버린다고 느껴지도록은 하게 되지 말자..

마치 지금 어쩔 수 없이 가는 것이라고 느끼면서 지는것이야!하고 느끼지만..

졸업할때쯤은 다녀와서 좋았다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하자..

그래야 조금이라도 맘이 편할 것 같다..
by FreeMan | 2009/09/06 20:22 | 무념.. | 트랙백 | 덧글(0)
장가항에서 베이징여행
갔다온지 3년 가까이 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

집에서 사진정리하다가 예전에 중국출장 갔을때 베이징놀러가서 찍은 사진을 보다가 괜히 웃음이..
아 이래서 추억은 참 좋은것이야.. 부활노래 추억이면(裏面)도 듣고 있겠다 싶어서 갑자기 egloos에 올리고 싶은 맘이 굴뚝같이..
근데 이 포스트도 거의 3년 만인듯.. 좀 자주 들어와 글도 올리고 해야지..

엄청 긴 여정인데 다 생각이 날지도 모르겠고.. (아래 내용이 부정확한 곳이 있을수도.. 오래된 기억이라..)
또 몇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고.. 좌우간 추억을 되새기면서 시작해보자..

장가항으로 출장을 가서 6개월 정도 지났을 때쯤 회사사람들이 황산에 놀러갈 계획을 짜고 있었는데..
난 6개월 정도 독학을 한 중국어로 감히 베이징을 따로 가고 싶어서 이탈을 결심했다. 그래도 한 나라에 왔는데 수도는 가봐야 하지 않겠나 하고.. 그래서 중국에 온지 얼마 안됀 다른 회사사람을 꼬셔서 둘이 같이 가기로 했다..

토일 이렇게 2틀밖에 시간이 없으니 금요일 저녁에 가서 월요일 아침에 오기로 빡빡한 일정을 짰다.. 중국이 좀 멀어야지.. 웬간하면 1박 2일은 불가능하다..

장가항에는 베이징가는 교통편이 없기 때문에 우시로 버스를 타고 가서 기차를 타고 가야 한다. 6시에 퇴근을 하고 집도 안들리고 바로 우시가는 버스를 타고 우시역으로 갔다..

(우시역에서 폼잡고 찍은 사진..  원래 얼굴팔리는거 싫어하는데 워낙 찍은 사진이 부족해서 어쩔수 없이..)

이때가 8시쯤 되었나 싶다..

(우시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

기차표를 끊어야 하는데 제일 비싼 표밖에 없어서 어쩔수 없이 거금 460원(지금 우리나라돈으로는 70000원 정도..)를 주고 표를 샀던것 같다. 참고로 기차표가 4종류가 있는데 딱딱한 의자, 푹신한 의자, 기차칸에 6인용 침대 쭈루룩.., 기차칸을 독립된 방으로 분리해서 4인용 침대.. 이렇게 4종류다.. 잉쭈어, 루안쭈어, 잉워, 루안워.. 이렇게 나누어 지는데 나중에 중국에서 다시 올때 잉쭈어=>잉워를 이용해서 왔는데 다시 탈 기회가 있으면 돈이 들더라도 루안워를 이용해야지란 생각이 굴뚝같았다.. 그 이유는 좀 돌아오는 길에 정리를.. 중국은 이동거리가 멀기때문에 이렇게 기차뿐 아니라 버스에서도 침대가 있다..


(내가 이용했던 루완워 내부)..

위 사진이 내가 이용했던 기차의 루완워인데.. 시설이 아주 좋았다. 청결하고 편안하고.. 전기도 들어오고.. 일반 중국인들은 이용못하는 시설인데 그래도 한국사람이라고 부담없이 이용하니 좀 뿌듯하기도 하고..

(루완워 외부)

(같이 루완워를 이용했던 사람들..)
가운데 사람은 나랑 같이 베이징여행을 했던 회사사람이구.. 좌우 두 분이 같은 칸을 이용하게된 중국인이었다. 6개월된 중국어로 저분들과 대화를 하다보니 땀이 삐질삐질..

남자분은 중국영화감독이라고 했고 여자분은 영화배우라고 했다. 명함까지 받았는데 집에 디카가 없는 관계로. 생략..
남자분은 차장이랑도 알고 해서 밤늦게까지 술을 드시고 오고 여자분은 계속 책을 봤던 기억이.. 나중에 남자분이 들어왔을때는 가히 경악할 코골이로 중간중간 깨고.. 여자분은 익숙한듯.. 그냥 주무시고.. 둘이 부부는 아니구.. 그냥 동료라고 했다..

이렇게 중국에서 첫 민간인 인연을 만들면서 첫날 축억을 만들었고.. 이렇게 기차를 타고 12시간 정도를 가면 베이징에 도착한다..
아침 8시쯤이라고 했으니.. 정말 중국이 크긴 크다. 그냥 완행열차도 아니고 상해로 가는 제일 빠른 기차였는도 12시간이라니..
하긴 지도를 보면 우시하고(상해근처) 베이징 거리가 우리나라 몇개는 지나야 한다..

(베이징역)

가도가도 창밖은 어둡기만 했서 뭐가 있는지 몰랐는데. 새벽 6시쯤 깨고 창밖을 보니 산도 없이 그냥 지평선만 쭉 펼쳐진채로 4시간을 더 갔던거 같다. 그렇게 도착한 베이징역에서 사진한방 찍고.. 제일 먼저 중국생활을 오래하신 회사사람에게 얻은 정보인 아주 저렴한 숙소를 찾아 가기로 했다..

아 정말 가물가물...

(지하철역 매표소)

베이징역 지하철을 타고 몇정거장을 가면 숙소가 있었는데 지금 정확이 어떻게 가는지 기억이 안난다. 그 근처에 유명한 한약방인 동인당건물이 있다. 100년 정도 되었다니.. 아래 사진이 동인당건물..
(동인당)

4층 짜리였던거 같은데 들어가보지는 않았다..

(이름이.. 뭐더라..)

인력거는 아니구 앞에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뒤에 손님을 태우고 이동하는.. 음 그러니까 인력거에 자전거를 붙인거라 보면되는데 이걸타고 5분 정도를 가면 숙소가 나온다. 그때 중국돈으로 1원(지금 우라나라돈은 180원)을 주었다. 5원정도 드릴라고 했는데 하두 이런거 많이 주면 다른 여행자가 피해본다는 소리를 들어서 첨에 5원이었던거 1원으로 깍은거다..ㅡㅡ;; 내릴때 맘이 안좋아서 1원더 드렸는데 드리면서도 참.. 기분이 찜찜했다는.. 내 다시는 중국가서 안타리라 생각했다..

(숙소사진)

이름이 고려장이었는데 배낭여행객들에게는 유명한 곳인듯 했다. 70원인가 주고 묶었던거 같은데 저 침대가 침대가 아닌 앉거나 누우면 스프링이 바로 느껴지는.. 가운데가 푹 들어가서 마치 20년은 쓴듯한 침대였다..
조선족분들도 많이 묶었었고 연탄으로 더운물을 데워서 세수를 했던 기억이 난다. 어릴때 은색의 큰 솥에 더운물을 데워서 사람들이 아침에 세수도 하고.. 이도 닦고..
주인도 조선족이고.. 딸이 카운터에 있던것으로 기억하는데.. 다시 베이징가면 또 묶고 싶은 곳이다. 편하거나 시설이 좋아서가 아니라 좀 낮선 풍경이었지만 다시 경험해도 그리 나쁘지 않을 기억으로 남아서..

짐을 풀고 바로 나가면서 식사를 해결하려 카운터에 있던 스무살 안팎으로 보였던 그 주인아저씨 따님에게 전취덕이라고 베이징카오야로 유명한 집이 어딨냐고 물어봤는데 아가씨가 거기 맛도 없고 비싸기만 하다고 극구 만류하는 바람에 근처에 싸고 많이 주고 맛있다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참고로 전취덕은 김정일이 베이징에 갔을때 보안상 이유로 손님을 받지 말고 이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는데 거절했다는.. 이야기로 유명하다.. 사실인지는 나도 들은얘기라..

(숙소 앞 동네 거리 풍경)

(고려장 따님 추천으로 먹은 음식)

먹기전에 찍었어야 했는데 먹다가.. 아차 싶어서.. 좀 더럽네..
그 따님이 직접 쪽지에 메뉴까지 적어서 이거 먹으라고 해서 음식을 시켰다. 생활회화는 되는데 음식이름같은거는 메뉴판에 사진도 없고 읽을줄도 모르기 때문에 따님에게 부탁을 했다.
맛은 우리나라의 깐풍기 같았는데 입에 맞았고 베이징카오야도 맥주한잔하고 같이 먹었다. 베이징카오야는 좀 느끼해서 남겼던 기억이..
전취적이 100원정도라고 했던거 같은데 여기서 둘이 먹은 음식이 40원 밖에 안나왔으니 탁월한 선택이었던거 같다.


(식당)

점심을 해결한 집 옆에 식당이 하나 있었는데 저 인형이 서태후란다. 예전에 서태후가 즐겨 먹었던 만두를 만들었던 집이라고 하던데 나중에 먹어본 느낌은 그냥 먹을만 하다는 정도..

배를 채우고 경극 구경을 하러 갔다. 약도를 가지고 이리저리 헤매다가 어렵게 찾았는데 그 매표소에 있던 누님(40대 초반 정도)에게 경극표를 사려고 안돼는 중국말로 몇시에 있느냐 얼마냐 물어보는데 그 누님이나 나나 서로 말이 잘 안통해서 답답하던 차에 영어로 하자고 했다. 그래서 같이 간 회사동료에게 바통을 넘겼는데 이 누나가 거의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한국식 영어를 무의식중에 기대했던 우리는.. 다시 중국어로 하자고..ㅡㅡ;;

어렵게 저녁 7시쯤 표를 구하고 인민광장으로 고고싱..

인민광장에서 찍은 사진인데 공안이 부동자세로 있고 그 뒤로 마우쩌둥(모택동)사진이 보인다. 중국인 친구에서 마오쩌둥죽었다는 얘기를 했는데 잠들었다고 표현을 했던 기억이.. 중국 지폐는 구권말고 현재 많이 사용되는 화폐의 인물은 다 마오쩌둥..


천안문 사태에 중심에 서있는 인민기념비.. 천안문사태때 이 인민기념비에 바쳐진 저우언라이를 추모하기 위한 화한을 공안이 제거함에 격분한 학생들과 시민들에 의해 촉발되었다는 곳이다.

인민대회당으로 가끔 뉴스에 나오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열리는 곳이다. 아직 베이징올림픽이 열리기 전이라 앞에 올림픽카운트다운하는 조형물이 있다.
아래는 밤에 찍은 사진..
887일 남았었으니 정말 한옜날 얘기군..

인민광장을 구경하고 자금성으로 바로 갔다. 자금성을 끝에서 끝까지 거의 안쉬고 걸었는데 1시간정도 걸렸다. 크긴 컸는데 내가 그런 고궁이나 박물관같은 것에 관심이 없어서 그냥 갔다왔다는데 의의를 두고 걷기만 했다. 자금성 사진 감상..

(자금성 입구)

가도가도 이런 건물이 계속 나온다. 영화에 보면 황제를 만나러 사신이 한참을 걷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제야 이해가 갔다.
자금성에서 나와서 한방..

자금성나오기 전에 식당이 하나 있는데 거기서 사발면을 먹고 허기를 채웠다. 그 앞에 연못이 있었는데 동전이 엄첨 많았다. 우리나라 처럼 연못에 동전 던지고 소원을 비는곳인듯 해서 그 회사 동료랑 우리나라돈으로 10원짜리 던지면서 베이징에서 중국친구사귀게 해달라고 빌었다. 양심도 없지 백원도 아니구 10원으로.. 물론 그 친구는 여자면 더 좋겠지만..ㅡㅡ;; 남자든 여자든 중국친구가 없던 상황이라.. 여하튼 이 소원이 그 다음날 이뤄지니 참.. 10원의 힘이..

아직 겨울이라 연못이 다 얼었다. 저중에 내 10원(중국돈 1마오)가 있다. ㅡㅡ;;

여하튼 이제 자금성 구경도 했고 예약해 놨던 경극을 보러 다시 그 극장으로 향했다.
저녁 시간대 공연이라 저녁까지 같이 제공을 했다. 잠시 경극 사진 감상..

다 중국말이라 하나도 못알아 들었슴 ㅡㅡ;;
이 두분은 백남봉 남보원씨 처럼 새소리 기차소리도 내시고.. 옆에 사람들은 재밌다고 웃는데 나랑 그 회사사람은 무슨소린지 당최 감이 안잡히니 좀 답답했다.
이 경극을 보러 온 이유는 변검을 보러 왔던거기 때문에 사실은 변검언제하나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정작 마지막순서였고 시간은 5분정도 밖에 안했다. 총 1시간 정도 했는데 그래도 5분정도가 정말 볼만한 가치가 있었다. 감상하시길..



변검을 끝으로 경극을 다 보고 다시 숙소로 와서 잠을 잤다. 술을 한잔하려고 했으나 술집을 못찾고 또 거리에 사람도 없고 해서 일찍 자고 내일 아침에 만리장성을 갔다와서 우시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려면 시간이 많이 없을것 같았다.

담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바로 짐을 챙겨나와 만리장성가는 길에 올랐다. 시내버스를 타고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만리장성까지 가는 버스가 있는 곳으로 이동을 하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베이징버스)

초행길이고 다른나라라서 계속 사람들에게 길을 묻고 있는데 그중 자기들도 만리장성가는길이라고 하는 중국인 2명이 있었는데 완췌이하고 황사오리라는 중국 대학생이었다.

이 친구들인데 만리장성을 갔다와서 다닌다는 학교에 갔었는데 중국중앙민족대학생이었다. 우리나라처럼 캠퍼스가 큰 대학이 아니고 시내에 있는 대학이었다. 중국에서 대학을 다닌다는 것은 특별한 혜택이다. 경제적문제가 젤 크게 작용한다. 아무래도 학비가 일반 인민이 가기에는 불가능할수도 있는 금액이다 보니. 그나저나 나는 사진찍을때 항상 처 포즈인지 참.. .없어보이네..

다시 터미널로 돌아가서 자기들도 만리장성간다고 하고 아 그러냐고 한 1분정도 얘기를 했던거 같은데 어떤 아저씨가 그 친구들에게 뭐라뭐라 중국말을 건네고 나와 회사동료는 저 친구들 따라가면 될것같다고 안도를 하던중..
그 친구들이 다시 우리한테 다가와 만리장성가는 승합차가 있는데 200원만 달라고 한다. 4명이서 200원 내고 같이가자.. 라는 제의가 들어왔다. 그 어저씨가 아마도 이 일을 직업으로 가지는 것 같고 그 친구들에게 흥정을 한것 같다.
가는 버스 오는 버스 그리고 시간을 따져보니 나쁘지 않을것 같아서 그렇게 하자고 했다.

승합차를 타고 그 친구들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가는데 이러다 이거 뉴스에 보던 장기뽑아가는거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잠시 들었지만 그 친구들이 그럴것 같지는 않구.. 그래서 그냥 또 안되는 중국어로 낑낑대며 얘기를 하면서.. 한시간정도 간듯하니까 도착을 했다.
생각했던 만리장성을 쭉 볼수 있는게 아니라 산에 막혀 그 길이가 제대로 안보였고 또 관광할수 있는 길이도 그렇게 길지 않았다. 걸어서 올라가서 내려오는데 2시간 정도 걸린거 같다. 만리장성에서의 사진들..

만리장성 여행중의 백미..
아 역시 우라나라 사람들은 갔다왔다는 티를 내야돼..
근데 사진을 저 글씨만 찍어서 그렇지 만국어가 다 적혀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가 부다..

아마 중국에서 산을 첨보고 첨 올라본거 같다. 내 생각에는 중국사람들은 평생 바다를 못보고 죽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고 산을 못보는 사람들도 엄청 많을 것 같다.

그렇게 만리장성여행을 금방 끝내고(솔직히 뭐 볼건 없다. 자금성처럼 갔다 왔다는..) 돌아오는 길에 몇군데를 더 들렸는데 별 기억에 남지 않고 사진도 없어서.. 이 부분은 스킵..

첨 승합차를 탓던 곳으로 다시 돌아와서 위에서 봤던 그 친구들이 다니는 대학교를 구경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기차시간이 좀 남아서 그 친구들이 알고 있다는 북한식당이 있다길래 그 식당을 가기로 했다.
중국에 와사 북한식당을 가보지 못했기 때무에 꼭 가고 싶었는데.. 결과는 1시간 정도 헤맨끝에 못찾았다..ㅡㅡ;;
그래서 근처 KFC에 가서 점보세트를 시켜서 간단히 먹기로 했다.

나는 자꾸 기차때문에 시계를 보고 빨리 먹으라고 했고 그 중국친구가 괜찮다고 시간에 맞쳐서 갈수 있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그래서 햄버거와 닭을 다 먹고 지하철을 이용해서 베이징역으로 가는데 아무래도 시간안에 못갈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기차 출발 15분전에 도착을 해서 그 친구들과 서둘러 작별인사를 하고 회사동료와 나는 뛰기 시작했다. 이거 놓지면 낼 출근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무조건 타야 했다. 베이징역에서 2,3분정도 기차타는 곳을 찾던 나와 그 동료는 탑승구를 발결하고 또 뛰기 시작했는데 마침 아줌마가 탑승구를 열쇠로 잠그는 것이 아닌가..

"저기 저 이거 타야 되는데요"
"끝났어요"
"아니 열시 방금잠갔잖아요 조금만 봐줘요"
"안돼요" 그러더니 휘리릭~~ 하고 사라졌다.

바로 눈앞에서 사람들이 타고 있는데 안됀단다..
열쇠 풀고 잠그고 1분도 안걸리는데 안됀단다..

중국이나 한국이나 공무원이란.. 그래도 한국은 봐줄텐데..

나중에 알고보니 기차출발 10분정에 다 들어가야 한다는데 그래도 이건 좀 심했다..

결국.. 기차를 놓치고 말았다.
X됐다.. 나는 바로 다시 매표소로 가서 다음 기차를 알아보고 돌아가는 방법도 알아보고 비행기도 알아보고..
근데 없었다.. 내일 정상출근할 방법은..

그때 그 회사동료와 내가 그 매표소중앙에 그냥 털썩 앉아서 얼마나 웃었는지..
기가막히고 한심하고.. 사람이 자포자기를 하면 웃음이 나나부다..

차분이 다시 방법을 생각해봤다. 이런저런 방법중 난징을 가서 거기서 버스를 타고 우시로 가서 다시 우시에서 장가항으로 가면 내일 12시쯤에는 출근을 할 수 있을것 같았다. 그래서 난징가는 표를 알아보는데..
좌석이 잉쭈어.. 즉 제일 안좋은 딱딱한 의자에 앉아서 12시간을 가는 것 밖에 없었다. 어쩔수 없이 그걸로 끊고 회사사람에게 전화를 해서 늦을것 같다고 연락을 취하고 바로 기차를 탓다.. 여기서부터 고행의 시작이 되었는데..


그 딱딱한 의자에서 1시간정도 가다 보니 열차 승무원이 한국사람이냐고 물어보길래 그렇다니까 조금 있다가 침대로 바꿔주는 표를 파니까 그때 사라고 알려주었다. 우리가 올때 탄 그 침대칸이 아니라 3층침대가 열차칸에 쭉 이어진 그 침대칸이었다.
표를 파는 시간이 되었는데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드는 바람에 결국 표를 못하고 다시한번 망연자실하고 있었는데 아까 그 승무원이 표를 못샀냐고 또 물어봤다. 자기가 표를 구해줄테니 조금 있다가 와라.. 아 역시 한류의 힘이.. 이런데서 혜택을 보다니..

좌우간 엄청 피곤했다. 아침 7시쯤인가 숙소를 나와서 지금까지 계속 걷으면서 돌아다녔으니..

잠시후 그 승무원이 표를 2장 가지고 와서 차액을 내고 침대칸으로 이동을 했다.
올때 만난 그 영화감독과 배우, 그리고 그 다음날 만난 중국 대학생들, 그리고 이 승무원까지.. 여행은 이런 돌발상황이 재밌는것 같다는 생각이..

근데 그 침대칸이라는게.. 음.. 어떻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내가 찍은게 없어서 이전 글에서 사진을 올린것이 있었네..
난 잠도 잘 안와서 설치고 그 중국사람들의 특유의 시끄러움을 제대로 느끼면서 불편하지만 침대에 쪼그려 몸을 눕히고 난징에 도착을 했다. 난징에서 가이드북에 나와있는대로 버스터미널로 가려고 택시를 잡고 기사한테 이 터미널로 가자고 얘기를 했는데 막상 그 터미널에 도착을 하니까 없어졌단다. 기차역에서 가까운곳에 터미널이 있었던것.. 그러면 기사아저씨가 이 터미널이 없어졌다고 얘기를 해줄만도 한데.. 막상 도착하니까.. 없어졌다네.. 내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던지 그 아저씨가 일부러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리저리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에서 더 짜증이 확.. 밀려왔다. 이미 9시가 넘어 출근시간은 지난 상태인데 이런 일까지..

다시 택시를 돌려 아까 내렸던 그 기차역 근처 터미널로 이동을 하는데 그때 상태는 회사동료나 나나 서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어서 서로 안건드리는..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이 된 상태였다. 돈도 다 떨어지고 씻지도 못해서 몰골도 말이 아니구..(여기서 지나는 사람한테 길을 물었는데 슬슬 피하더라는..) 터미널에서 빵을 샀는데 스폰지도 그런 스폰지가 없었다..

여기서 생각을 못한게 바로 장가항으로 가는 버스를 알아봤어야 하는데 급한마음에 베이징가는길에 갔던 우시표를 사버린것이다. 우시행 차에 올라 출발할때 아차하면서 생각이 들었는데..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정신이 드는게 아니라 정신을 차릴수 없다는 생각이.. 베이징에서 생각한 경로라서 전혀 의심도 안하고 있었는데.. 둘다 그런 생각을 못했다니..

결국에는 우시로 가서 다시 장가항행 버스를 타고 다시 집으로 가서 씻고 택시를 타고 회사에 도착하니 2시쯤 된것 같았다.
총 18시간을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택시를 타고 한 꼴이 되었는데 아마 평생 이럴일은 이제 없을듯하다.

이걸로 베이징 여행은 끝이었는데.. 다녀와서 생각해보니 참 재밌었다.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새로운 상황을 경험하고 기차도 놓쳐서 회사 지각도 하고.. 엄청 고생도 하고..
지금은 연락이 안되지만 그 대학생 친구들하고 몇번 전화도 하고 나중에 만리장성에서 찍은 사진을 메일로 보내주었다.

내가 원래 여행을 싫어해서 다시 언제 여행을 할지 모르지만 다음에도 이런 멋진 여행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담에 가면 정말 맘에 맞는 친구랑 첨 가보는 곳으로 가봐야 겠다.

휴~ 손가락 아퍼라..
by FreeMan | 2009/09/03 00:07 | 중국에서..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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